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특징 == 선수 시절 등번호는 23번.[* 조던은 그의 형 래리 조던과의 1:1 농구 시합에서 항상 이겨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래리 조던의 학교 선수 시절 등 번호는 45번이었는데, 마이클은 형의 반만큼만이라도 농구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45번의 2분의 1인 23번을 선택한 것. 아래에 서술되지만, 1차 복귀 이후에는 잠시 45번을 달기도 했었으나, 그 시즌 도중에 23번으로 돌아갔다. 근데 막상 형 래리 조던은 엄청난 농구 실력에도 키가 173cm(5피트 8인치)에 그친 바람에 농구를 접어야 했다. 조던 집안에선 178cm(5피트10인치)인 아버지 제임스가 그나마 큰 편일 정도로 어머니 들로리스와 5남매를 통틀어 180을 하나도 못 넘길 정도로 키가 작은 집안이다. 혼자 198cm(신발 신은 키)나 되는 마이클이 별종인 셈. 마이클의 장남 제프리는 185, 차남 마커스는 193 (둘 다 농구화 신은 신장)으로 그나마 큰 편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조던 집안의 최장신은 마이클 조던이다.] 워낙 유명해서 농구가 아니더라도 조던 세대들은 숫자 23을 조던 넘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예로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을 때, 그는 전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부터 줄곧 사용한 등번호 7번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시 7번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던 [[라울 곤살레스]]가 달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베컴은 7번 대신 조던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23번을 선택했다. 두 레전드의 선택을 받은 농구 외 스포츠에서도 상징적인 번호.] 농구인들끼리는 암묵적으로 23번이 축구에서 [[펠레|10번]]이[* 10번은 [[펠레]] 이전에도 이미 중요한 번호였다. 원래 축구의 번호는 포지션을 의미했기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의 10번은 가장 화려한 포지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펠레가 17살 어린 나이에 브라질 대표팀의 10번을 받은 것은 어쩌다보니 우연히 받은 것이긴 하다. 우연히 10번을 단 어린 소년이 브라질 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고 도합 무려 3번이나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후, 10번이 포지션 불문 에이스의 상징이 돼버린 것이다. 반면 농구의 23번은 정말 아무 의미 없는 번호였다.] 가지는 상징 그 이상으로 여겨지거나 아예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만큼 조던이 아무 의미 없던 특정 백넘버[* 현재까지 23번을 주로 달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는 조던 외에는 [[프랭크 램지]]와 [[켈빈 머피]]뿐이며, 훗날 헌액이 확실시되는 [[르브론 제임스]]까지 해봐야 네 명이다. 게다가 램지는 1950년대 선수였고 램지와 머피 둘 다 NBA를 주름잡던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번호 자체의 상징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NBA에서 전통적으로 레전드들이 많이 달았던 번호는 33번으로 [[카림 압둘자바]],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 [[알론조 모닝]], [[스카티 피펜]], [[그랜트 힐]] 등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달았고, [[샤킬 오닐]]조차도 원래 아마추어 시절 33번을 달다가(유잉을 존경해서 선택한 번호다.) 프로 입단 이후엔 33번을 누가 이미 달고 있어서 32번으로 바꿨다. 레이커스로 이적해서는 압둘자바 때문에 33번이 결번되어 있어 34번을 선택했는데 34번 역시 결번되었다.]에 이 정도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로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의 시그니처 농구화로는 [[에어 조던]]이 있다. 이견의 여지가 없는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슈퍼스타'''로[* 2K 게임즈에서 제작한 NBA 2K12에서는 전설의 농구선수 18명의 팀을 플레이하여 플레이한 선수들의 팀을 해금해서 그 팀과 선수들로 통상 경기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그레이티스트 모드가 있다. 여기서 버젓이 1번, 즉 맨 앞에 위치하고 계신다. 참고로 2번은 [[매직 존슨]], 3번은 [[래리 버드]]. 실제로 저 셋은 커리어도 커리어이지만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NBA 역사에서 가장 굵직한 3인이다.]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60103/962209|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부문에서 1위라는 것이 그의 입지를 잘 말해준다. 참고로 2위는 [[베이브 루스]], 3위는 [[무하마드 알리]]. 농구 그 자체를 대표하는 선수. NBA를 지금의 위치로 올려놓은 두 인물 중 하나로, 나머지 한 명이 커미셔너를 역임한 [[데이비드 스턴]]임을 감안할 때, 선수인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고 봐도 좋다.[* 참고로 커미셔너(총재)는 절대 권력자가 절대 아니라 실질적인 힘은 자금줄을 거머쥔 구단주들에게 있으며 총재는 이들의 동의 하에 임명된 월급쟁이 사장 정도 위치이다. 구단주는 총재의 해임을 위한 구단주 투표를 건의할 수 있는 반면, 총재는 구단주를 퇴출시킬 수 없고 구단주를 퇴출하려면 구단주 투표가 필요하다. 즉, 구단주들은 총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반면 총재는 구단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실제 파워에서는 돈줄을 쥔 구단주들이 더 막강하다. 다만 구단주와 달리 총재는 NBA 자체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리그를 변화시키는 면에 있어선 당연히 영향력이 막강하다. 게다가 스턴은 198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년간 장기집권하면서 드래프트 2라운드제(그 이전까지는 10몇개 라운드까지 있었으며 매년 바뀌었다), 드래프트 생중계(초창기엔 방송국에 돈까지 쥐어주면서 했다. 물론 지금은 광고료 받는다), NBA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공격농구와 공격수 보호를 위한 일련의 룰 개정 등 수많은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총재보다 훨씬 막대한 영향력을 준 인물. 실제로 1980년대에 드래프트 중계권도 못 팔고 파이널도 녹화 중계되던 시절부터, 선수 연봉만 팀당 10억 달러 언저리를(스턴 은퇴 당시 기준) 지출하는 거대 리그가 되기까지 스턴, 그리고 스포츠 사상 가장 마케팅 가치가 높은 존재 중 하나인 조던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순수 기량과 커리어 자체도 정상에 있지만, 거기에 계약서에 "상기에 명시된 경기 이외에 몇 경기를 그저 "농구가 좋아서(for the love of the game)" 돈을 받지 않고 뛰어줄 수도 있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농구에 미친 사람'이었고, 더불어 미디어에 자신을 포장할 줄도 알았으며 이미지 메이킹에도 천부적인 소질을 발휘, 즉 실력도 실력이지만 조던이라는 사람 자체의 스타성과 상품성이 매우 뛰어났다. 매직 존슨, 래리 버드의 라이벌리 시대가 끝나가는 시기인 1990년 초에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NBA 대표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고, 그 당시부터 위성 방송으로 라이브 경기를 세계에서 비교적 싼 값에 송출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나 스마트 기기들로 활발히 정보 교환이 되는 시기도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에 더욱 편리한 시대였기도 했다.[* 매직 존슨이나 래리 버드, [[줄리어스 어빙]] 같은 그 이전 세대의 NBA 간판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시기적으로 굉장히 잘 타고났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잡은 건 온전히 그의 실력.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말하기가 좀 애매한 게, 조던 수준의 실력과 인기를 지닌 선수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매직, 버드나 어빙, 후대의 코비, 르브론 등이 최소한 리그 내에서 입지가 조던과 비슷한데 노출도의 차이로 조던이 압도적인 상품 가치를 갖게 되었다면 시대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들은 조던만큼의 입지를 가진 적이 없다. 르브론의 예를 들면 그는 조던 이후 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선수이다. 그러나 NBA 특성상 리그 최고의 활약을 해도 우승을 하지 못하면 우승한 팀에게 시선이 쏠리게 된다. 07-08 시즌 리그에서 가장 뛰어나고 인기 있는 선수는 [[코비 브라이언트]]였지만, 파이널 패배 이후 파이널 MVP였던 [[폴 피어스]]에게 시선이 쏠렸고, 르브론이 리그를 지배했던 2010년대에도 우승에 실패하며 [[디르크 노비츠키]],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등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겼다.] 물론 미디어의 발달 차이로 인해 조던의 경우 현재 스타들에 비해 노출도에서 훨씬 떨어지기에 이득이 되는 건 오직 이미지 메이킹 하나 때문인데, 조던은 본인의 소심하고 지독하기까지 한 승부근성이 다 까발려진 이후인 2010년 이후에도 계속해서 농구 선수들 중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압도적인 실력과 시대적 배경을 떠나도 그의 생애 자체가 마치 짠 것처럼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것 역시 그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잘하는 선수야 많았지만, 이렇게 각본을 쓴 것처럼 농구 인생이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 농구 선수는 없었다. * 고등학교 시절 학교 팀 선발에서 탈락, 이후 실력을 갈고닦아 전미 최고 수준의 유망주가 됨 * 대학 1학년 때 당시 기준으로 농구 역사상 가장 많은 유료 관중들 앞에서 역전 위닝슛을 터트려 팀을 우승으로 이끔 * 프로 2년차, 부상당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되어 역대 최고의 팀 중 하나이자 당대 최강팀을 상대로 터트린 플레이오프 최다득점(63점) 기록 * NBA 역사상 최초로 시리즈 최종전에서 지고 있는 팀이 버저 비터로 역전승한 The Shot[* 현재까지도 시리즈 최종전 승리를 결정지은 버저비터는 더 샷과 2019년 우승팀 토론토 랩터스의 카와이 레너드가 필라델피아 시리즈 7차전에서 성공시킨 미드레인지 슛, 이 둘 밖에 없다. 그리고 레너드의 샷은 동점 상황에서 쏜 것이었기 때문에 지고 있는 팀이 시리즈 최종전을 버저비터로 승리한 케이스는(즉, 슛 한 번으로 지옥과 천당이 갈리는 상황에서 성공시킨 것은) 아직까지도 더 샷이 유일하다.] * 리그 최하위권 팀에 데뷔해 한 단계 한 단계씩 성장하며 리그 최강이던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레벨업을 하듯 1승 4패, 2승 4패, 3승 4패로 매해 1승씩 더 거두다가 결국 디펜딩 챔피언이던 디트로이트를 4-0으로 스윕하고 파이널 진출 * 1980년대를 양분하여 지배한 매직의 마지막 파이널과 맞물린 그의 첫 파이널, 대관식을 하듯 매직과 비슷한 방식으로, 매직보다 더 뛰어난 활약을 하며 승리해 첫 우승[* 평균 득점을 30점 이상하면서 어시스트도 경기 당 10개 정도를 뿌렸다.] * 같은 포지션의 라이벌이었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맞붙어 모든 면에서, 심지어 약점이라 여겨졌던 3점 슛에서조차 그를 능가하며 두 번째 우승 * 동년배들 중 처음으로 MVP 투표에서 조던을 제낀 절친 찰스 바클리를 압도하며 한 세 번째 우승 * 모든 걸 이룬 바로 그 해 찾아온 아버지의 피살이라는 비극, 이로 인해 정상의 자리에서 미련없이 은퇴,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야구라는 스포츠로 도피 * 야구계 파업과 함께 복귀, 그러나 첫 해 겪은 좌절 * 좌절을 딛고 이뤄낸 NBA 사상 한 시즌 역대 최다승 기록, 복귀 후 네 번째 우승을 아버지의 날에 이뤄냄 * 다시 오른 파이널 무대에서 2-2로 팽팽히 맞선 승부처, 하필 그 때 식중독에 걸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안 좋은 몸 상태를 딛고 팀을 승리로 이끈[* 그냥 이끈 정도가 아니라 38점을 넣었다. 사람들에게는 식중독이 아닌 독감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조던이 식중독에 걸린 이유는 게임 전날 밤에 먹은 피자 때문이다. 그 경기는 불스의 원정 경기였기 때문에, 피자가게 직원들이 주문자가 조던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수작을 부렸다는 의혹도 있다.] Flu Game * 커리어 마지막 파이널 무대의 마지막 경기에서 믿었던 2인자의 부상 재발, 동료들의 단체 부진을 딛고 원맨쇼로 꾸역꾸역 따라가다가 마지막 순간에 스틸+역전 위닝샷 * 리그 최고의 선수로 우승까지 거머쥔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정상에서 은퇴 웬만한 선수들은 커리어에 몇 번 있는 정도인 극적인 사건이 거의 매 시즌마다 있을 정도로 엄청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위닝샷이나 경기력 관련 일들은 넘어가더라도 최정상급 선수들은 아무리 잘해도 애초부터 겪기 힘든 일들이 많다. 일단 역대급 재능을 지닌 선수라면 보통 고등학교 정도는 씹어먹지 1군 선발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시대를 지배하는 선수가 첫 파이널에 하필이면 그 전 시대를 지배하던 선수와 바통터치하듯이 만나는 경우도 지금까진 없었으며(마치 르브론이 첫 파이널에서 코비를, 오닐이 첫 파이널에서 조던을, 혹은 압둘자바가 첫 파이널에서 러셀이나 체임벌린을 만나 우승한 느낌이다), 같은 컨퍼런스 라이벌이 준왕조급 강팀인데 저렇게 매년 레벨업하듯 성장해 극복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만약 르브론이 마이애미로 이적하지 않고 클리블랜드에 남아 보스턴을 꺾었다면 저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최전성기에 은퇴는 말할 것도 없으며, 대부분의 레전드들은 은퇴 시즌에 우승이라고 해도 수준급 선수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조던은 1992-93 시즌, 1997-98 시즌 모두 리그 최강자였다.] 짰나 싶을 정도로 극적인 일을 겪은 것이 그의 커리어를 전설로 만드는 데 한몫은 했지만, 순수하게 스포츠 커리어 측면에서만 보면 손해도 많이 봤다. 조던은 명성에 비해 비교적 짧은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이다. 특히 그는 신체와 기량이 정점에 달한 30세에 아버지가 살해당해 갑자기 은퇴를 해 한 시즌 반, 다른 스포츠에 적응하느라 낭비한 시간을 합하면 거의 2년을 허비했다. 또한 1997-98 시즌에는 비록 하락세이긴 했지만 리그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던 MVP가 돈 문제로 팀을 해체하고자 한 구단주로 인해 35세 나이에 은퇴를 했다.[* 35세 당시 조던은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리그 최고의 선수였고, 조던과 동시대에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한 선수는 [[칼 말론]], [[존 스탁턴]]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그는 튼튼한 선수였다.] 이미 굵직한 커리어에 무언가를 더 추가할 기회를 두 번이나 날린 셈이었다. 이 점 때문에 그의 워싱턴 복귀를 안 좋게 보는 팬들도 많다. 물론 워싱턴 시절에도 커리어 로우 득점을 한 이후 비판의 시선을 잠재우는 51점, 역대 유일하게 40점을 넘긴 40대 선수, 버저 비터 게임 위닝샷 이후 해설자의 "Michael Jordan, the greatest player of all time!"이란 외침 등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시카고 시절만큼 극적인 순간은 없었다. 51점이나 40대 40점은 모두 경기력 면에서 보면 굉장히 극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극적인 사건은 꽤나 흔하다. 조던이 더 특별했던 것은 조던 본인의 개인사나 스포츠 외적으로 봐도 극적인 면모가 더해졌던 것이다. 정상에서 은퇴하는 선수들은 종종 있지만 아버지의 피살로 인해 은퇴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가? 또한 그 비극을 딛고 복귀했는데 하필 아버지의 날에 정상에 복귀하는 건 또 얼마나 극적인가?[* 단판제가 아닌 7전 4승제라 언제 시리즈가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짠 것도 아니다.] 조던과 다른 "역대급으로 잘하는" 선수들을 구분짓는 그런 드라마가 워싱턴 시절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시카고 불스는 조던 이전 9시즌 동안 2시즌 밖에 플레이오프를 못 간 약체팀이었는데, 조던은 불스에 뽑히면서 "내가 이 팀에 가는 이상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겠다"라고 선언했고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다. 조던이 불스에서 활약한 전 시즌 내내 불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3시즌, 1984-1993, 1995-1998) * 마이클 조던이 플레이오프에서 이긴 팀과 횟수: 뉴욕 닉스 5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4회, 마이애미 히트 3회, 유타 / 샬럿 / 필라델피아 / 애틀랜타 2회, 밀워키 / 시애틀 / 레이커스 / 피닉스 / 뉴저지 / 디트로이트 / 워싱턴 / 포틀랜드 / 올랜도 / 인디애나 1회 * 마이클 조던이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팀과 횟수: 디트로이트 3회, 보스턴 2회, 올랜도/밀워키 1회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3.147.68.182)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